원래 시나브로 게시판은
제가 혼자서 그냥 마음가는 대로, 은혜받은 대로 부담 없이 그 날의 생각들을 정리하고자
했던 게시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의도가 오히려 많은 분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옹달샘처럼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시나브로는 쉬엄쉬엄 가는 인생 길에서 서로가 마음을 터놓고 작은 이야기라도 함께 하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새벽에 겨울 비가 내리더니 언젠 가부터는 사각거리는 눈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새벽 이후에는 바깥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핸드폰으로 눈이 많이 내린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요즈음 핸드폰은 여러가지 참 편한 점이 많습니다. 날씨 상황도 알려주고, 긴급상황도 가끔씩 알려줍니다.
겨울이면 그저 포근한 것만 좋아했던 날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겨울 산행이라도 하고싶은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산행을 하기에는 등반장비가 태부족입니다. 높은 산을 오를만큼 시간 여유도 없지만,
탁 트인 산 정상에 오른지도 하 오래되어서 그리움 같은 게 있나 봅니다.
허리가 좋지 않은 탓도 있지만, 예전처럼 마음 먹고 떠나는 여행도 쉽지 않고, 산행도 홀로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보입니다.
나이 탓? 그럴 수도 있겠지만, 쉬이 움직이질 않는 마음 때문일 겁니다.
겨울 산!! 정초에는 기도하러 간다는 핑계 삼아 오르기도 했던 산 산들이었습니다.
순백의 눈이 쌓인 산 속에서 유난히 짙푸른 적송을 보면서 그렇게 고요했던 그 산길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금이야 산 정상까지 도로가 뚫려서 가픈 숨을 몰아쉬며 꾸역꾸역 올라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산이었지만,
그래도 반나절을 땀에 젖고 귀가 멍해지도록 차가운 바람에 얼굴이 터지고 그래야 산 타는 맛이 나는 법입니다.
아무도 함부로 오를 수 없는 그런 산들이 이제는 많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좀은 아쉽지만,
휘몰아치는 산 바람 앞에서 눈을 못뜨고 끓여먹은 커피 맛이 최고였습니다.
이제는 항상 함께 산에 올랐던 분들이 어디에 사는지도 가물거리는 만큼 세월이 흘렀습니다.
알뜰살뜰이 장만했던 코펠이며, 텐트, 물통이며, 아이잭, 등산화며, 등산복도 없어졌고,
텐트 밑에 깔았던 미제 담요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겨울, 특히 추운 겨울 날이면 산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하얀 눈이 무릎까지 차올랐던 그 해 한라 산도 그립고, 눈에 흠뻑 젖어 버린 온 몸을 데우기 위해서
밤새 버너를 키웠던 그 한 밤의 지리 산도 눈에 선합니다.
그토록 추워서 정말 추위에 취해버렸던 그 날 밤 바람 소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렇게 기억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