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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교회] 가정 교회 찾기(3)
  글쓴이 : 카스텔리오     날짜 : 10-09-27 05:39     조회 : 11829    
<사도행전 2장> -흠정역-
 
 44. 믿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45. 자기 소유와 재산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대로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며 

 46. 또 날마다 한마음이 되어 성전에 거하고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며 빵을 떼면서 단일한 마음으로 즐겁게 자기들의 음식을 먹고 
 
지난번에 이어서 연결합니다.
한번에 다루기가 쉽지 않은 관계로 나눠서 하다보니 시간 차이가 발생하는군요.
기억이 가물 가물 하시는 독자들께옵서는 먼저 이 글 ☜ 을 다시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대부분 설교에서 초대교회를 말할때 자주 애용되는 본문입니다. 공동체를 강조하면서 기성 교회마다 이 말씀을 이용해서 교인들로 하여금 억지로 죄책감과 함께 나눔정신을 실천 하도록 종용하고, 그것이 부족할땐 무마하기 위하여 '십일조'나 각종 명목상의 헌금으로 대신 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죠.
 
 
실질적으로 교인들은 전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거듭남' 이나 '그리스도인'들이 아님에도 마치 강단에서 설교자들은 '교회등록' 교인이면 자동으로 성경에서 안디옥에서'처음으로 그리스도인' 이라 불렸다는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과 동일시 여기도록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혀 엉터립니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두리뭉실하게 처리하고 무조건 '교회의 회원'으로 인정(받아들임)해서 교인숫자 늘이기에만 급급한 것입니다.
 
 
그 이면에는 당연히 교인 한 사람이 매월 교회에 지불하는 '돈' 이 계산된 것입니다. 그래서 개신교는 결코 '십일조'(시빌조)와'헌금'을 계속해서 구약시대에 끝난 율법에 따라 바치는것을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지겨운 '말라기'만 죽어라고 붙잡고 울겨 먹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신약의 복음서는 아무 상관 없는 것이죠.
 
 
신약성경에서 한 번도 언급한적이 없는 십일조 교리와 신학을 만들어서 지금껏 유용하게 써 먹었고 앞으로도 계속 목사 후보생들에 의하여 사용되어질 전망입니다. 교인들은 "복음"을 미처 듣기도 전에 공연한 죄책감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다가 마치 로마 가톨릭의 면죄부같은 '십일조'로 대신 때우고 자기의 믿음을 인정받도록 교육(세뇌)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도행전 본문을 통해서도 '봐라, 초대교회성도들이...저렇게' 생활한것에 비하면 지금 십일조에 인색하거나 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냐는 식으로 교인들을 달달 볶지요. 본문을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그냥 목사들이 횅설수설하는 것만 듣게되면 평생을 돈 바치고 교회충성하고도 정작 주님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는 도무지 너를 모르겠구나" 하면 어쩌겠습니까?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기독교인들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직접 말씀을 찾아서 읽고 묵상해야 삽니다. 말씀에서 벗어나는 헛된 교훈이나 가르침에 맹종하는 것은'우맹이요 소경' 된 자가 되어 인도자나 따라가는 자가 함께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이것은 엄청나게 중요한 것입니다. 누가 대신 살아주는 인생이 아니잖아요?
 
 
아무리 영성이 깊고 훌륭한 목사가 나에게 은혜를 끼쳐도 나를 위하여 대신 살아주지는 않습니다. 그저 우리 목사님 말씀만 잘 듣고 아멘하며 순종하면 복받는다거나 이것이 믿음이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아니될 일입니다. 그럼 본문이 지금 무엇을 말씀하는가를 함께 볼까요.
 
 
 
 44. 믿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45. 자기 소유와 재산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대로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며 
 46. 또 날마다 한마음이 되어 성전에 거하고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며 빵을 떼면서 단일한 마음으로 즐겁게 자기들의 음식을 먹고 
 
 
본문을 보면 쉽게 간과하며 지나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눈치 빠른 분들은 짐작하셨겟지만, 모든 사람들이 함께 지내며...에서 그 앞에 "믿은 모든 사람들" 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함께 모였는가 하면 "믿은, 믿는자들" 입니다. 여기서 믿는 자들이란 당연히 베드로와 사도들이 전한 "십자가 복음"을 듣고 기쁨으로 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원래 나면서 부터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절기를 지키려고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입니다.
 
 
<사도행전 2장>
 5. 독실한 자들 곧 유대인들이 하늘 아래 모든 민족으로부터 나아와 예루살렘에 거하고 있었는데
 6. 이제 이 일이 널리 퍼지매 그 무리가 함께 와서 그들이 자기 자신의 말로 말하는 것을 각 사람이 들으므로 당황해하더라.
 7. 그들이 모두 놀라고 이상히 여기며 서로 이르되, 보라, 말하는 이 사람들은 다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냐?
 8. 그런데
어떻게 우리 각 사람이 우리가 태어난 곳의 우리 언어로 듣느냐?
 9. 우리는 바대 사람과 메대 사람과 엘람 사람이며 또 메소포타미아와 유대와 갑바도기아와 본도와 아시아와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와 이집트와 구레네 부근의 리비아의 여러 지방에 거하는 사람이고 또 로마에서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 개종자와
 11. 크레테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이라. 그들이 우리 언어들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말함을 우리가 듣는도다, 하고
 
 
여기서 믿는 사람들이란 무엇을 말함인가요?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사도들과 제자들이 다른 언어로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방언이니 하늘의 언어니 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어입니다. 다른 언어로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 믿지 못할 일들에 대하여 증거하였고 그것을 각나라의 언어로 듣고 놀라워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 그말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에 모여든 유대인들에게는 큰 명절을 지키는것 외에는 다른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22.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스스로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님을 통하여 기적들과 이적들과 표적들을 너희 한가운데서 행하사 그분을 너희 가운데서 하나님의 인정받은 사람으로 삼으셨느니라.
 23. 그분께서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과 미리 아심을 통하여 넘겨지매 너희가 그분을 붙잡아 사악한 손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분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일으키셨으니 이는 사망이 그분을 붙들 수 없었기 때문이라.
 25. 다윗이 그분에 관하여 말하되, 내가 항상 내 얼굴 앞에 계신 [주]를 미리 보았나니 그분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26.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더욱이 내 육체도 소망 중에 안식하리니
 27.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들을 내게 알려 주셨으니 주의 얼굴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이다, 하느니라.
 29. 사람들아 형제들아, 내가 족장 다윗에 대하여 거리낌 없이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는 죽어서 묻혔고 그의 돌무덤은 이 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도다.
 30. 그런즉 그는 대언자이므로 하나님께서 이미 자기에게 서약으로 맹세하사 육체를 따라 자기 허리의 열매에서 그리스도를 일으켜서 자기 왕좌에 앉히실 것을 알았고
 31. 또 이것을 미리 보았으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의 혼이 지옥에 남겨지지 아니하였고 그의 육체도 썩음을 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였느니라.
 32.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일으키셨으며 우리는 다 그 일에 증인이로다.
 33. 그러므로 그분께서 하나님의 오른손에 의해 높여지시고 [아버지]에게서 [성령]님을 약속으로 받아서 너희가 지금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들로 올라가지 아니하였으나 친히 이르되,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받침으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느니라.
 36. 그런즉 이스라엘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그 동일한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셨느니라, 하니라.
 
 
 
지금 믿는다는 것이란 단지 예수 이름을 부르고 믿는다는 고백을 하는것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에 대하여 듣고 믿는 것입니다. 그 놀라운 일이 무엇이냐 하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 당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고 부할하셨고 그분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의 흘린 피로 죄들이 사함을 받는다는 것" 에 대한 증언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 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아들을 통하여 십자가에서 성취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믿는다는것은 그가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세주되심과 그의 흘린 피로 인하여 죄 사함과 함께 하나님과 화목되었다는 것을 믿는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행한 것이 없이 오직 이미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하여 성취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을 행하거나 지키거나 인간의 공로나 의로움으로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 에 하나님께서 홀로 행하심, 다 이룩하심에 대하여 듣고 믿는 것이 믿음이라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본문에서 함께 모인 무리들이란 단지 인간적인 혈통이나 족보나 학연 지연등으로 모인 친목단체도 아니며 공통의 목적과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단체나 조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사건의 현장은 로마의 지배를 받는 속국인 이스라엘, 즉 유대민족입니다. 유대교가 민족 종교이며 신앙이며 공동체로 하나를 이루는 단일 민족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곧 나면서 부터 철저하게 유대교를 삶의 최고의 종교이며 교육이며 신앙으로 믿고 유대인의 정체성을 생명처럼 소중하게 지키는 민족이라 그말입니다.
 
 
유대민족의 정체성은 세계에서 유일하며 독특하며 결코 혼합되지 않으며 배타적이며 독립적입니다. 유대교의 정신을 지키기 위하여 타 민족과 타 문화와 결코 혼합하지 않는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 정치 종교적인 문화속에서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인정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기다리던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를 '신성모독' 죄로 고소하였고 정죄하였으며 로마 법을 빌어서 사형에 처한 것이 유대인들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일단의 소수의 무리들이 성령의 강권하심에 의하여 담대하게 '십자가에 죽임 당한 예수가 살아나셨고 그가 그리스도요 구세주' 라고 말하는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이방인들이 아니라 정통 유대인들에게 그동안의 유대교를 버리고 '새로운 교'를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상황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상황입니까?
 
 
비록 로마에 민족의 주권을 빼앗긴체 살고 있어도 이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선민이며 유대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유대교를 떠난다면 그는 곧 유대 사회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히며 출교를 당하며 모든 유대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유대교에서 개종을 한다는 것은 목숨 걸고 해야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개종하는 것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죠. 천주교로 개종하느니 개신교로 개종하느니 불교로 개종하는 그런 것하고 다른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유대교를 떠난다는것은 생명과 바꾸는 것입니다.
 
 
지금 본문에서 함께 모인 무리들이란 바로 그런 생명과 맞바꾼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것은 곧 유대인들에게 이단자였던 자를 따르는 것이며 동시에 배신자이며 함께 공존할 수 없는 대적자가 된다는 것을 포함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여기 본문에서 함께 모인 사람들이란 바로 유대인에서 당시로 말하면 이단의 괴수인 나사렛 예수교로 개종한자들이 됩니다. 유대인의 모든 신분과 지위와 자격과 권리를  포기(박탈)당하는 것을 기쁘게 인정한 무리들이다 그말입니다.
 
 
단지 비신자에서 교회 회원으로 등록하는것이 아닙니다. 불교신자에서 기독교신자로 개종하는것하고 차원이 다릅니다. 오늘날 누가 개종했다고 특별한 재약이나 불평등한 대우를 받거나 감옥에 가거나 살해 위협을 당하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적어도 대한민국 땅에서는 말입니다. 아주 특수한 경우를 빼면 거의 그렇습니다.
 
 
적어도 오늘의 본문에서 함께 모여 공동으로 소유하고 나누고 하는 것들은 당시 유대민족 속에서 "생명과 바꾼 개종자들" 이었으며 이들은 성령의 강권하신 개입과 함께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맺어진 형재요 자매요 모친으로서의 새로운 가족들" 이라는 것입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흘린 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공산주의의 사상과 같은 공동 소유와 분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맺어진 관계요 말씀과 성령안에서 하나된 관계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12장>
46. 그분께서 아직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보라, 그분의 어머니와 그분의 형제들이 그분과 말하기를 바라며 밖에 서 있더라.
 47. 그때에 한 사람이 그분께 이르되, 보소서, 선생님의 어머니와 선생님의 형제들이 선생님과 말하기를 바라며 밖에 서 있나이다, 하거늘
 48. 그분께서 자기에게 말한 사람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냐?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시고
 49. 손을 내밀어 자기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을 보라!
 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 곧 그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니라. (이 당시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 이전 이었으므로 당연히 이 말씀을 이해한 자가 그 현장에서는 아무도 없었고 성취되지 않았다. 필자 - 주)
 
이 말씀이 성취되는 현장을 지금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이것을 간과한체 특정 종교나 종파에 소속한것을 본문과 동일시 생각한다면
결국 끝이 다를 수 밖에 없지요. (바른 복음과 성경의 계시를 깨닫지 못한 결과로 오늘날 뿐 아니라 중세시대의 끔찍한 종교분쟁과 십자군 원정등...다른 열매들이 맺어진 것을 우리는 교훈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시작하지 못하고 인간의 의와 사상과 종교로 시작하는 것의 전혀 다른 결과를 우리는 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하는것을 직시하지 못하고서 다만 그 이름을 주여 주여 부르며 사람이 만들어낸 교리나 문답이나 종교 서약등을 인정했다고 해서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과 동일하게 여긴다면 이는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수나 조금 다른 견해차이가 아닙니다. 무슨 교리의 다름과 차이가 아니라 바로 "생명" 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복음"과 영생과 구원,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에도 엄청난 착오가 발생하는 문제이며 동시에 하나님이 아들을 통하여 세우시는 교회의 본질과도 직결되는 엄청난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2010/09/27 ⓒ 사랑그리고편지  ↘ http://cafe.daum.net/lkd37/NjUN/2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