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초대교회] 가정 교회 찾기(4)-그들은 날마다 성전에서(주일성수?)
  글쓴이 : 카스텔리오     날짜 : 10-09-29 05:21     조회 : 10352    
예전에 작성한 글을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는데...
검색해 보니 타 카페에 스크랩 되었던 것을 찾았습니다. 우째 이런 일이 ㅎㅎㅎ~
마침 사도행전 본문으로 초대교회가 가정교회임을 찾아 입증하려던 차에
아무래도 당시 성전에 모였다는 본문을 목사들이 자꾸 현대 건물조직 교회로 악용하는것에 세뇌당한 지체들에게 쓸데없는 죄책감에서 빨리 벗어나시라는 의미로 이 글을 다시 앵콜로 올려서 나누기를 원합니다. 비록 내용이 다듬어 지지 않고 거칠고 조잡스럽지만 걸러서 들으시고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일성수를 강조하는 좋은구절입니다.
 
42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그리고 이집 저집에서 쉬지 않고 가르치고,
예수그리스도임을 전하였다.(사도행전5장)
 
교회에 자주 모이기를 힘쓰라는 구절이 이 구절입니다.
 
25    어떤 사람들과 같이, 모이는 일을 그만두지 말고, 서로 격려하여,
그 날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입시다.(히브리서 10장)  
 
설교의 결론으로 아주 유용합니다.
 
이 말씀을 결론적으로 하면서 성도들로 하여금 교회 빠지는것은 죄라는 인식을 심어 줍니다.
직장은 빠져도 수요예배 금요 철야 예배는 빠지면 믿음이 없다고 은근히 심어 줍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니까 빼먹으면 도적질한것 이라고 말라기서를 들이 대지요.
과부의 두 렙돈을 보신 예수님께서도 부자들이 많이 한 것보다 더 칭찬하셨다고 가르칩니다.
 
어떻게 성경을 읽어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가난하다고
교회에 헌금하는것을 빠지는것은 하나님도 용서 안하신다는 식으로 들리잖아요?
당장에 집은 빛에 이자 감당하느라 막막한 성도들이 교회 구석구석에도 있습니다.
그들을 향하여서 강단에서는 우선 순위를 강조합니다.
 
사람에게 빚을 지는것은 잘못이고 갚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빛을 지는것은 더욱 큰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께 먼저 드려야 한다....
그래야 복을 받고 사업도 성공하고 자녀들도 잘 되고 물질복도 받아서
결국은 빛을 갚게 된다는 식입니다....
 
제가 성전을 헐라는 글을 얼마 전에 여러 싸이트에 올렸습니다.
 
다양하더군요.
꽤 점잖으신 어떤분이 댓글로 응수하기를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처럼 하지 말자면서 위의 성구를 알려주었습니다.
 
우리가 보통 이단이라 알고 있는 그들도 힘써서 모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종교와 상관없이 모이기를 원합니다.
혼자 살수 없습니다. 당연히 모여서 만남과 나눔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된 믿는 사람들도 당연히 모여야 합니다.
어디서 모일까요?
 
그리스도안에서 모여야 합니다.
 
초대교회 공동체를 이럴때는 요긴하게 이용합니다.
잘 봐라 하면서 모든 교회에서 인용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초대 교회 공동체적인 삶을 말하거나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목사는 강단에서 거룩하게 사랑을 가르치지만
정말 자신이 먼저 본을 보이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어김없이 주일날만 되면
전부가 죄인인양 주눅들어서 파김치가 되어 교회를 떠납니다.
 
어떤 예화 설교를 보았습니다.
 
어떤 교회에 있었던 일입니다. 갑자기 그 교회 목사님께서 병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인들은 목사님의 건강회복을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목사님께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는 다른 목사님께서 임시로
강단을 맡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설교가 다 끝난 뒤에 그는 심각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본 교회 목사님께서는 빠른 시일 내에 신장 이식수술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목사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목사님을 위해 신장 하나를
기꺼이 기증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데 누구의 심장을 기증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한 가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오늘 제가 가벼운 오리털 하나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제 제가 강단에서 여러분들을 향해서
이 오리털을 힘껏 불겠습니다.
 
그러면 이 오리털이 날아가다가
내려앉은 사람이 자기의 신장 하나를 목사님께 기증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기쁜 마음으로 이 일에 순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드디어 그 목사님은 오리털을 손에 들고서 입으로 세차게 불었습니다.
오리털은 공중으로 높이 올라갔습니다.
모든 교인들은 고개를 들고서 과연 그 오리털이 누구에게 떨어질까
주의 깊게 바라보았습니다.
 
오리털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더니, 어떤 장로님의 얼굴에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그 장로님은 바짝 긴장을 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 오리털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할렐루야!" 장로님의 입김에 그 오리털은 다시금 다른 곳으로 날아갔습니다.
공중에 빙글빙글 맴돌던 그 오리털은 이번에도 어떤 권사님의 얼굴에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권사님도 깜짝 놀란 모습으로 크게 외쳤습니다. "아멘!" 그러자
그 오리털은 또 다시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 날 그 교회는 모처럼 은혜가 충만했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소리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예화 설교의 결론이 뭐였을까요?
 
이 이야기는 물론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겠지요. 목사님에게 좋은 것을 아낌없이
드리라는 뜻도 아니겠지요. 이 이야기가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든, 목사님이든, 성도든, 말로만 사랑하지 말로 진심으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말로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
마음만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곧 몸으로 드리는 거룩한 예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산 예배를 통해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산 예배를 통해 언제나 감격과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산 예배를 통해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여기까지 예화)
 
이렇게 결론을 내면 성도들은 하나같이
무거운 마음으로 세상 모든 짐을 다 짊어지고 교회당을 나가는 것입니다.
과연, 목사님들은 성도들에게 그런 시험을 제공하 자격이 있을까요?
저는 대부분의 교회의 설교 가운데 예화의 적용은 오로지 성도들뿐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는 시험을 주는 자가 될 뿐이지요.
누구든지 강단에서면 그렇게 말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본성입니다.
강단에서 거룩하게 감히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하여 그런식으로
마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듯이 훈계하면서
본인은 아무런 적용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직자가 되면
목사 가운을 입으면
박사가 되면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견줄정도로 그 영성과 신앙이 견고한 것일까요?
 
아하~!
그래서 목사가 되고자 하는것이군요.
높은 단에서 내려다 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위의 예화에서 저는
차라리 목사님께서 신장을 기증하겠노라 했다면 어떴을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게 순서 아닌가요?
 
설교를 통해서 성도들을 가르치고 본인은 적용에서 자유롭습니까?
성도들은 모조리 죄인 만들어 버리고 기도하고 축도하면 그 예배가 예배입니까?
 
한국교회는 이미 예배에서부터 비틀어졌습니다.(전부가 그렇다는것이 아닌줄 아시지요)
위에서 부터 일방적으로 내려치는 설교방식입니다.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예수께서는 일방적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당연히 예수께서는 입을 열어서 가르치실 권세가 있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서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는 신분과 자격과 어떤 구별이 없었습니다.
비록 호되게 야단을 맞은 대제사장들이나 율법사들,바리새인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질문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고도로 지능적으로 고의적으로
주님을 함정에 빠트리려는 대적자들의 질문마저도 들으셨습니다.
 
길을 가시다가도
병자들의 소리를 듣고 멈추셨습니다.
문둥병자들, 귀신들려 고통하는 자들,혈루증으로 율법에 의하면
부정한 여인의 접근마져도...
과부의 아들의 관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율법주의로 사람을 차별하던 불의한 그 시대에서
율법을 은혜와 사랑의 법으로 바꾸셨습니다.
주님은 직접 찾아가셔서 만나셨습니다.
 
오늘 한국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건물이 요지부동입니다.
수백억원씩 투자(?)해서 성을 쌓았습니다.(저는 투자라고 봅니다)
꼼짝 못하는 건물에 살아있는 성전된 성도들이 죽은 건물로 찾아갑니다.
거기가면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난다고 하지요?
 
제가 건물에 집착하지 말라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건물이 있게되면 치장을 해야 하고 관리를 해야 합니다.
거기에 걸맞는 사람들을 세워야 하고 조직을 구성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가정 공동체입니다.
가정공동체가 기초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가정이 교회입니다.
하나님과 아담과의 막힘없는 친밀함....
그것이 비록 깨어졌지만
그 후의 창세기의 믿음의 후손들은 계속해서 가족입니다.
홍수이후에도 분명하게 갈라집니다.
 
세상으로 가는 쪽은 바벨탑을 쌓습니다.
모든 종교의 기원이 바벨탑과 관계가 있다는것을 들었습니다.
태양을 신으로 숭배하는 이교도(사탄)의 기원이 바벨탑의 후예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증거하는 교회는 아브라함을 시작으로해서 이삭으로 야곱으로 이어집니다.
애굽에서의 이스라엘을 민족으로 선택하시고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그것을 신약의 성도들은 광야교회라고 불렀습니다.
광야에서는 각기 장막에서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인하여서
성전 제사가 단번에 그의 몸으로 제물이 되셔서 단번에 끝내셨습니다.
 
9    그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첫 번째 것을 폐하셨습니다. 10    이 뜻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을 오직 한 번 바치심으로써,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15    그리고 성령도 우리에게 증언하여 주십니다.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    "나 주가 말한다. 그 날 이후에, 내가 그들에게 세워 줄 언약은 이것이다.
나는 내 율법을 그들의 마음에다가 주고, 그들의 생각에다가 새겨 줄 것이다."
17    그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18    죄와 불법이 용서되었으니, 죄를 사하는 제사는 더 이상 필요없습니다.
 
굳게 섭시다

19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20    예수께서는 휘장을 꿰뚫어서,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 21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제사장이 계십니다. 22    그러니
우리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우리는 마음에다가
예수의 피를 뿌려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맑은 물로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23    
우리에게 약속하신 분은 신실하시니, 우리는 흔들리지 말고, 우리가 고백하는 그 신앙을
굳게 잡읍시다. 24    그리고 서로 마음을 써서,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합시다.
 
교회는 성도들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 교회입니다.
그러면 봅시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디서 모였습니까?
 
42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그리고 이집 저집에서 쉬지 않고 가르치고,
예수그리스도임을 전하였다.(사도행전5장)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44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면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45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가졌다. 46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마다 빵을 떼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믿는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모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장소가 "성전"이지 않느냐 하면서 지금의 교회당과 연결시키려고 합니다.
그 당시의 성전은 대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과연 초대교회 성도들이
대제사장이 집행하는 구약의 율법에 따라 드리는 제사제도에 기꺼이 동참했다는 것입니까?
 
이미 성도들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그리스도요 주님으로 왕으로 믿는자들입니다.
거기 있는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은 아직도 예수를 적대자로 생각합니다.
사실은 바울도 회심하기 전까지는 예수 믿는 성도들과 교회를(집들을) 찾아다니면서
핍박하고 잡아서 때리고 감옥에 가두던 자였습니다.
 
지금 사도행전의 성도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담대하게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성전에 찾아간 것입니다.
무덤에 있어야할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지자(부활)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찾아가서
먼저 선수를 쳤습니다. 혹시 제자들이 몰래 훔쳐가서는 살았다고 할수 있으니까
군병들을 시켜서 지켜야 한다 했지만 실패했었고 무덤을 지켰던 군병들이 그들에게
보고하자 돈을 주면서 제자들이 도적해갔다고 소문을 내게 한것입니다.
 
그랬던 그들이 모이는 성전에
성도들이 무슨 용기가 있어서 모입니까?
성령이 아니고서는 그럴수가 없는것입니다.
그러한 전후 사정을 묵인한체 성전에 모였으니
지금도 교회당에 모이기를 힘쓰자 하는것이 무슨 소리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주일을 그렇게 신성시할 수 있습니까?
 
구원얻은 성도들에게는  모든 날이 주의 날입니다.
 
주일만 거룩하고 나머지는 거룩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바울역시 우리에게 편지하기를
주일 성수 잘하라고 하였겠지요?
특별한 날과 달과 절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것은 이미 우상숭배입니다.
특별한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오늘날의 신분제도역시 우상숭배입니다.
모세의 무덤을 아무도 모르게 한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만일 모세의 무덤이 알려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광야에서 달린 구리뱀(놋뱀)마져도 우상이 되었고
기드온이 만든 에봇을 사람들이 음란하게 우상으로 섬겼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말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교회의 개념을 정확하게 인식한 것입니다.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서),이집 저집에서 쉬지 않고 가르치고,
예수그리스도임을 전하였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마다 빵을 떼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그들은 날마다 성도들의 집에서 모였습니다.
날마다입니다. 어떤 날을 잡아서 모인것이 아니라 매일 모였습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을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가정일 수 밖에 없습니다.
가까운 가정과 가정들이 연합해서 모이는것이 매일 모일수 있는 것입니다.
이웃들이 그들(성도)의 모임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맺어진 것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된 그들의 삶이 당연하게 달랐던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교회로 모여서 시간 때우고는 이웃들과 직장에서 사회공동체 안에서
그들과 똑같은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모습들과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모이기를 힘쓰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이 예수안에서 믿음의 가정으로 하나가 되기를 위하여 더욱 섬겨야 합니다.
가정에서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섬기십시오.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모범으로 보이십시오.
본을 보이십시오.
 
교회당이 없으면
하나님이 일 못하실거 같아서 걱정이 되시는지요?
목사가 없고 장로가 없으면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을
기르시지 못할것 같아서 염려가 되십니까?
성령님은 잠만 주무시는 분인가요?
 
1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본다. 내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2    내 도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님에게서 온다.
3    주께서는, 네가 헛발을 디디지 않게 지켜 주신다. 너를 지키시느라 졸지도 않으신다.
4    보아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5    주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주님은 네 오른쪽에 서서, 너를 보호하는 그늘이 되어 주시니,
6    낮의 해도 너를 해치지 못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7    주께서 너를 모든 재난에서 지켜 주시며, 네 생명을 지켜 주실 것이다.
8    주께서는, 네가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이제부터 영원까지 지켜 주실 것이다.(시편121편)
 
저는 바울 사도의 이 고백을 신뢰합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핍박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36    성경에 기록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필요합니다. 건물교회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건물 교회자체가 본질로 대치되는 오늘날은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이런다고 대형교회들이 변할리가 있습니까?
 
우리가 문제입니다.
성경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는 공동체가 모여서
교제를 나누는것을 누가 반대합니까?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거듭난 형제들이라면 모두가 모이기를 기뻐할 것입니다.
 
한 마음으로 모여서 매일 떡을 떼며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찬양할 것입니다.
직장이 곳 교회요 가정이 곧 교회요 이웃들과의 삶의 현장이 교회입니다.
거기서 그들과 함께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속의 삶을 보여주는 모습이 전도이며
삶으로 드리는 영적인 예배입니다.
 
제단에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와 다툰것이 생각나거든 가서 형제와 화해하고 오라는 것입니다.